[아무튼, 주말-이용재의 필름위의만찬]
29. '앤젤스 셰어'와 스카치 위스키 입문 요령 (下)
우리가 마시는 위스키도 로비가 맛보는 것처럼 술통에서 바로 병에 담은 제품일까?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다. 천사의 몫까지 챙겨가며 오랜 세월 숙성된 위스키는 도수가 제각각이다. 아무래도 제각각인 도수 만큼이나 맛과 향, 목넘김이 다를 수 밖에 없으므로 상품으로 출시할 때에는 도수를 균일하게 맞추는 작업을 거친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니, 우리가 시중에서 접하는 위스키의 알코올 도수가 균일하게 40도인 연유이다.
균일화를 거치지 않은 위스키는 과연 어떨까? 이런 궁금증을 가진 이들을 위해 ‘CS’라는 제품군이 있다. CS는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의 약어로 나무 술통(캐스크)의 힘(스트렝스)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술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싱글 몰트 원액이며 또렷한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으니 바에서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다만 50도 후반도 훌쩍 넘기곤 할 정도로 도수가 높다는 점만은 염두에 두자. 마셔보면 숫자, 즉 높은 도수보다는 매끄럽고 부드러운 CS 스카치 위스키가 많다는 점에 새삼 놀라지만 계속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다.
위스키의 개성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꼽자면 막바지 숙성을 통한 향 입히기이다. 일반 숙성 과정을 마치고 병에 담기기 직전 위스키는 잠시 다른 술의 세계에서 빌어온 술통의 신세를 진다. 오랜 세월을 버텨온 위스키 양조에서 화룡점정 같은 절차로, 막바지 6개월~2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향을 온몸으로 품는다. 향을 입히는 막바지 숙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술통의 주종은 스페인의 주정강화와인 셰리(sherry)다. 주정(酒精)을 더해 도수가 15~22도로 일반 와인보다 높은 셰리는 건포도, 무화과 등의 달콤한 향을 지니니 술통을 빌어 쓰는 싱글 몰트에게도 같은 계통의 향이 밴다. 셰리 숙성에 일생을 바치고 은퇴한 술통이 스코틀랜드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 향을 위스키에게 베푼다.
위스키의 개성이 미묘하게 달라진다는 이유로 요즘은 셰리를 넘어 세계 각지의 온갖 술통이 스코틀랜드로 소환되는 추세다. 셰리 다음으로는 사촌 격인 포르투갈의 포트(port)나 마데이라(madeira) 와인 술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세 술은 주정을 강화해 도수가 높고 달콤하여 디저트에 곁들여 마시며 싱글 몰트 위스키의 세계에 크게 공헌한다는 점까지 같다. 요즘은 ‘샤토 디켐’이 대표하는 프랑스 소테른 지역의 디저트 와인이나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을 대표하는 포도품종인 피노누아(pinot noir) 레드와인 등, 싱글 몰트의 세계에서 일반적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주종의 술통마저 소환되고 있다. 심지어 영국의 스카치와 미국의 버번 사이에서도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술통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스키의 흐름이 블렌디드에서 싱글 몰트 쪽으로 넘어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개성을 호소하기 위해 채택되는 한정판 전략의 일환이다.
이론은 이만하면 충분하니 실전을 위한 요령을 살펴보자. 만일 오늘 당장 바에 가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처음 마셔보고자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바텐더를 믿자. 싱글 몰트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예산을 알려준다면 바텐더가 그에 맞는 위스키를 소개해줄 것이다. 둘째, 이름에 ‘글렌(glen·glenn, ‘골짜기’라는 뜻의 게일어)’이 붙은 싱글 몰트를 고른다. 많은 양조장이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글렌’이라는 접두어가 붙었다. 대체로 이름이 ‘글렌○○○’인 위스키는 붙임성이 좋은 편이다. 셋째, 앞에서 언급한 셰리 캐스크 숙성을 거친 10~12년 사이의 위스키를 고른다. 이 세 조건을 다 충족시켜 고른 위스키라면 처음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이다. 한편 여름이라면 하이볼처럼 위스키의 장점은 살려주고 부피를 늘려 부담은 줄여주는 칵테일도 위스키와 안면을 트는 데 좋다.
이런저런 숙성 과정을 거쳐 품는 향을 감안하면 건과류 혹은 견과류가 싱글 몰트의 안주로 무난하면서도 잘 어울린다. 건포도부터 무화과, 파파야 등의 말린 과일이나 바나나칩, 아몬드에서 초콜릿까지 평소 가까이 두었던 주전부리를 곁들이면 된다. 안타깝게도 이도 저도 없다면? 냉동실 말린 멸치의 잠재력을 한 번 확인해보자. 대부분의 싱글 몰트가 바다 가까이에서 만들어지는데다가 술의 단맛과 멸치의 짠맛이 대조를 이루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로비는 성공적으로 위스키를 빼돌렸지만 사회봉사 친구의 미욱함으로 네 병 가운데 두 병이 깨져 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총량이 줄어 궁극적으로 가치가 높아진 위스키를 로비는 미리 밀약해둔 수집가에게 더 비싸게, 한 병만 팔아 넘기고 덤으로 양조장에 일자리도 얻는다. 그리고 나머지 한 병은 위스키를 맛보게 해준 사회봉사 감독관 해리에게 ‘천사의 몫(앤젤스 셰어·angel’s share)’이라며 남겨 두고 차를 몰아 고향을 떠난다. 아내와 갓난쟁이 아들과 함께 스코틀랜드의 모든 양조장을 한 바퀴 돈 뒤 일터가 될 양조장으로 향하는 해피 엔딩의 여정이다.
July 04, 2020 at 10:23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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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붙은 위스키를 마른멸치와 함께 음미하라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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